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는 2023년 기자간담회에서 2030년 매출 100조 원의 비전 달성을 위한 신성장 동력 중 하나로 전기차 충전기 사업을 꼽고, 조 단위 사업으로 빠르게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사업시작 3년 만에 충전기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LG전자가 GS가 약 500억 원을 투자한 전기차 충전기 회사 하이비차저에서 손을 뗀다. 2022년 인수합병(M&A)를 통해 하이비차저를 인수했지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고개를 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22일 LG전자는 ES(에코설루션)사업본부의 전기차 충전기 사업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LG전자의 전기차 충전기 제조 자회사 하이비차저는 청산된다. 전기차 캐즘으로 충전소 시장의 성장 속도가 기대보다 느려진 가운데 가격 경쟁은 치열해지면서다.
LG전자가 전기차 충전기 사업에 뛰어든 것은 2022년이다. 당시 LG전자는 GS와 함께 하이비차저(옛 애플망고)를 인수했다. 인수대금은 LG전자 60억 원, GS 34억원, GS네오텍 6억 원 등 총 100억 원이었다.
인수 직후 하이비차저 유상증자에 LG전자·GS·GS네오텍은 각각 246억 원, 124억 원, 29억 원을 추가 투자했다. 인수대금과 증자금을 합쳐 총 499억 원 투자한 것이다.
작년 말 기준 하이비차저 지분구조는 LG전자 60%, GS 34%, GS네오텍 6% 등이다. LG전자가 사업 주도권을 잡고, GS는 지분투자로 동업에 나선 모양이다.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이비차저 작년 매출은 106억 원으로 2023년보다 80% 증가했다. 하지만 영업손실은 2023년 70억 원에서 지난해 72억 원으로 확대됐다. 손실이 누적되면서 작년 말 결손금은 146억 원에 이르렀고, 부분자본잠식에 빠졌다.
감사인 삼일회계법인은 하이비차저의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대해 "계속기업으로서 존속할 수 있는 충분하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의견거절'을 통보했다.
GS는 지난해 하이비차저에 대해 투자금액인 152억 원을 전액 손상차손으로 처리했다. 미래 수익을 기대했던 자산이 이익을 내지 못하자 손실로 처리했다는 의미다. LG전자도 이번에 하이비차저 청산을 공식화하면서, 투자원금인 306억 원에 대해 손상차손을 처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다른 경쟁사도 처지는 비슷하다. SK일렉링크 작년 매출은 511억 원으로 전년동기대비 34% 증가했지만 영업손실은 2023년 145억 원에서 지난해 181억 원을 확대됐다. 결손금은 348억 원에 이른다. 롯데 계열의 이브이시스 작년 매출은 886억 원으로 일년전보다 10% 늘었지만 작년 영업손실은 133억 원으로 2023년(26억 원)보다 크게 늘었다.
LG전자는 전기차 충전기 사업에 손을 떼면서 HVAC(냉난방공조) 사업에 더 집중할 계획이다. 가정용·상업용 에어컨, 칠러, 히트펌프, 데이터센터 냉각솔루션 등 HVAC 등 시장은 최근 성장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기 사업 직원들은 사내 다른 부서에 전환 배치된다.
LG전자 관계자는 "전기차 전반적인 캐즘 영향과 경쟁 심화 등으로 LG전자가 선제적으로 전기차 충전소 사업을 접었다"며, "기존에 잘하던 부분에 집중을 하려는 전략적 리밸런싱 차원"이라고 말했다.
한편, LG전자는 앞서 신성장동력으로 채택한 전기차 충전 솔루션 사업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높은 품질과 풍부한 기업간거래(B2B) 경험, 계열사 간 협업 시너지로 미래 시장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포부를 밝혔다.
조주완 LG전자 대표(사장)는 지난해 3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전기차 충전기, 메타버스와 같은 빅웨이브(Big Wave) 영역에 초점을 두고 신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전기차 충전 솔루션 시장은 미래가 확실히 보장되는 영역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LG전자는 2018년 전기차 충전 솔루션 개발을 시작하고, 2022년 전기차 충전기 핵심기술을 보유한 애플망고(현 하이비차저)를 인수하며 본격적인 사업 확장을 알렸다. 지난해 7월에는 전기차 충전 사업을 조단위 규모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조 대표는 "전기차 시장이 둔화되면서 충전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있지만, 지금 전기차와 충전기 간 비중은 4:1 수준으로 매우 불균형하다. 충전기 사업의 미래가 밝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LG전자는 충전기 사업을 위해 국내 GS, 이마트 등 대형 사업자를 고객으로 확보했다. 글로벌 측면으로는 텍사스주 공장 건립 후 올해 본격 진출을 위한 유럽·아시아 진출 계획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