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차’ 수상 전기차, 르노 세닉 E-Tech 직접 타보니 달랐다!
차에 타는 순간부터 내리는 순간까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르노에 대한 상식과 프랑스차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까지 흔들렸던 적은 없었다. 그랑 콜레오스 시승 시 느꼈던 호기심은 세닉을 시승하는 동안 놀라운 순간의 연속이었다.
르노의 세닉은 원래 MPV였다. 지금도 유럽에서 "SCENIC" 배지를 달고 있는 차의 95% 이상은 뭉툭하게 생긴 프랑스다운 미니밴이었고, 지금 봐도 디자인은 여전히 특별하다.
하지만, SUV가 대세가 된 세상에 프랑스는 가장 늦게 반응한 국가이고 프랑스 브랜드 역시 SUV를 만들어야 했지만 옆 나라 이웃나라들보다 많이 늦었다.
독자적인 SUV 모델이 이전에도 거의 없었고, 있는 모델 역시 소형이었으니 준중형, 중형, 대형급 SUV를 만드는 것은 그들에게도 상당히 어려운 과제였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프랑스 출신 브랜드는 이 어려운 과제를 그들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해결해버렸다. 그들은 MPV, 우리가 아는 미니밴 영역의 절대 강자들이기도 했다. 르노 역시 캉구, 세닉, 에스파스 등 중소형 미니밴 실력은 최고였고, SUV에 추가하면 이상해질 것이 분명한 미니밴의 장점을 르노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SUV에 넣었고, 지금 보는 세닉은 그 결과물이다.
전동화 시대에 르노는 'E-Tech' 배지를 앞세우며 하이브리드, 전기차 모델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세닉 역시 E-Tech의 적용을 통해 이전 세대의 것과 완전히 다른 길을 나아갈 것임을 선언했고, 2024년 기아 EV9, 푸조 3008, BMW 5시리즈, 볼보 EX30 등 강력한 경쟁자들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올해의 차'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서울에서 르노 세닉 E-Tech 100% 일렉트릭(이하 세닉)을 만난 것은 상을 받은 지 1년이 훌쩍 지난 시점이었다, 르노는 그랑 콜레오스 출시 이후 지속적으로 2024년 세닉의 출시를 미리 알렸고 고객들의 마음속에 '세닉'이라는 이름을 조금씩 새겨 넣었다.
전기차 시장이 다소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세닉은 올해 999대 한정 수량만 판매하기 때문에 도로에서 마주칠 일이 생각보다 적을 것이라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어? 주행거리가 얼마라고?

세닉의 도어를 열었을 때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프랑스 느낌 가득한 콕핏이다. 다른 유럽 브랜드나 한국, 미국의 브랜드가 전통적인 자동차의 콕핏을 지향한다면, 프랑스 브랜드는 승용차보다는 전투기의 콕핏 스타일을 지향한다.
르노 역시 운전자를 감싸안으려는 듯 운전석을 디자인했고, 타는 순간 거의 모든 물리적 버튼과 디스플레이가 손끝에 닿는다. 부드러운 촉감은 덤이다.

잠시 몸을 숙여 아래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차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을 알아달라는 듯, 차는 거의 혼자 타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컵홀더는 하나뿐이다.
흔히 마시는 톨 사이즈 테이크아웃 잔이 들어갈까? 싶지만, 생수병 하나는 쏙 들어갈 정도다. 컵홀더를 만들어준 것만으로도 여전히 고맙다. 덕분에 이 차가 100% 'Made in France'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출발하기 전 주행거리를 잠시 봤는데, 어? 공식 인증받은 주행거리가 얼마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닉은 LG에너지솔루션이 제고한 87kW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고, 최대 주행거리가 460km라고 르노가 공식 발표했다.
시승할 차는 배터리 충전 레벨이 89%였고, 주행가능거리가 536km였는데, 대부분의 자동차(내연기관 포함)는 인증받은 연비보다 실제 주행 패턴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전 시승자가 엄청난 운전을 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공인 연비(전비)는 그저 참고할 정보로 보면 될 것 같다. 시승 코스도 왕복 250km 정도니 배터리가 부족할 일은 없겠다. 편하게, 때로는 스포티하게 주행해도 좋겠다.
디자인이 어디서 봤더라?

세닉의 초기 디자인은 2022년 '세닉 비전 콘셉트'를 통해 보였는데, 당시 르노의 디자인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었다. 이를 완성한 디자이너는 '질 비달(Gilles Vidal)'이다. 오랫동안 PSA 그룹에서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다양한 '푸조'의 미래를 보여주었던 그가 르노로 자리를 옮긴 이후부터 르노의 디자인은 급격한 진화를 시작했다.
질 비달은 '직선을 곡선처럼', '패턴을 곡선처럼' 만드는데 탁월한 디자이너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선이 면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오랜 시간 바람이 바위를 깎아가는 듯하며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그래서 질 비달의 디자인은 시간이 흐르며 익숙해지고 당연해진다. 그런 디자인이 세닉에는 가득가득 담겨있고 덕분에 차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앞부분에서 이어지는 사이드라인은 디지털 시대를 위해 간결하게 변한 '로장주' 엠블럼 패턴을 적극 사용해 면이 되기도 선이 되기도 하며 세닉을 휘감고 있고, 차를 더 스포티하게 보이게도, 편안하게 보이게도, 시선을 사로잡게도 만든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뒷모습은 매우 간결하지만 역시 로장주 엠블럼을 절묘하게 섞어두었다. 프랑스 출신답게 'SCENIC' 레터링은 멀리서 봐도 바로 기억할 수 있게 만드는 포인트.
4.4m 정도의 크기는 숫자로는 작지만 실제 1.8m의 전폭 덕분에 작아 보이지 않는다. 배터리를 차체 하부에 가득 담은 덕분에 오버행은 더욱 짧아져 운동성능을 기대하게 만드는 동시에 스포티한 느낌도 살짝 든다. 여유로운 2.78m의 휠베이스는 실내 공간이 여유로울 것이라는 증거다.

뒷좌석은 생각보다 여유롭다. 두툼한 시트는 장거리 이동에도 크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실제 1시간 30분 정도 뒷좌석에 앉아 이동했는데 준중형 SUV 세그먼트 기준에서는 불편함을 느낄 시간은 없다.

무릎 공간도 다소 여유가 있으니, 키가 190cm 정도까지라면 앞좌석 등받이에 무릎이 닿을 일은 없을 것이고, 30-40대가 구매한다면 아이들과 함께 이동하게 될 텐데 그럴 경우라면 더더욱 뒷좌석이 좁아서 불편하다는 이야기는 하기 어렵다.
'상쾌하다' 전기차를 타고 있는데, 이런 주행 질감이?

본격적인 시승을 하기 전 르노코리아 관계자는 아주 강한 어조로 "달려보면 다른 전기차와 많이 다른 느낌이 들 겁니다, 재미있을 거에요"라고 말했다. 전기차는 특유의 주행 질감이 있는데, 어떻게 다른 걸까? 하는 의문이 시승의 시작이었다.

시승을 시작하며 그 말을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분명 전기차를 타고 있는데 하이브리드 차를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고속 주행을 시작하면 내연기관 차를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있다.
방향 전환이 많은 시내 주행 시에는 프랑스차 고유의 민첩한 스티어링 조향 성능이 빛을 낸다. 불과 2.34회전에 불과한 스티어링 휠은 조금의 움직임으로도 원하는 방향으로 차를 움직이게 해주니 도시의 골목과 좁은 도로에서 불편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시내주행 시 가장 도움이 되는 기능이자 전기차를 타는 이유 중 하나인 '원 페달' 드라이빙도 큰 역할을 한다.
최대 5단계로 작동하는 회생 제동 시스템은 도심에서는 5단계로 설정해 두면 완전 전기차 느낌을 즐길 수 있고, 사용하지 않거나 1단계 -3 단계 정도라면 익숙한 내연기관 차에서 엔진브레이크를 사용하는 느낌으로 주행할 수 있다. 수시로 패들시프트를 사용하면 더 재미있는 주행이 가능하다.
스티어링 휠에 다이얼처럼 생긴 버튼이 있다. '멀티 센스'라는 기능인데, 차량의 분위기를 4가지 모드로 설정할 수 있다. 컴포트, 스포츠, 에코, 페르소 모드가 있는데 일반적인 차량에서 보던 것과 동일하고, 개인 설정이 가능한 모드는 '페르소'라는 멋진 이름을 사용한다.
전기차의 특성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시내 구간에서는 세닉이 전기차라는 사실을 매 순간 느끼지만, 고속도로에 들어서는 순간 세닉은 서브 캐릭터를 꺼내든다.
도심주행이 많은 대부분의 세닉 오너들은 공식 인증받은 전비는 4.4km/kWh이지만 웬만해서는 이 숫자 아래로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속 주행에서는 비슷한 숫자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스포츠 모드'가 계속 유혹하기 때문이다.

세닉이 고속주행에서 더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휠이다. 20인치 휠과 타이어는 고속주행시 공기저항을 줄여주고 효율성을 높여준다. 타이어는 극한의 스포츠 성향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고속주행에서는 부담감을 느끼기 어렵다.
스포츠 모드를 사용하면 엔진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나름대로 묵직한 사운드가 귀를 스친다. 가속페달은 더 무겁고 예민해지고 스티어링 휠을 잡은 손에는 힘이 살짝 들어간다.
100km/h에 가까워지고, 차량을 추월하기 위해 차선을 바꾸기 시작하면 세닉은 프랑스 차들이 보여주는 쫄깃한 움직임을 그대로 보인다. 움직임은 각도기로 잰 듯 움직이지 않고 목표를 향해 여유롭고 부드럽게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만큼 반응하며 어느새 원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일상적인 용도로 많이 사용하게 되는 전기차 세닉의 출력은 160kW(280PS)이다. 높은 출력은 아니지만 출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없을 정도의 딱 알맞은 수준이다. 그렇기에 고속주행 시에도 아쉬움 없이 달릴 수 있다.
탁 트인 도로에서 원하는 만큼 가속페달에 힘을 주며 달리는 느낌은 그저 '상쾌함' 뿐이다. 전기차를 타고 있다는 것도 잊을 정도로 운전자가 기대하는 수준의 주행 능력을 어떤 상황에서도 꺼내준다.
부드러운 고속 주행을 원하면 '컴포트' 모드에서, 머리가 헤드레스트에 닿는 느낌, 주변의 시야가 조금 더 빠르게 사라지고 추월을 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할 때 차 안을 붉게 물들이는 '스포츠모드'를 적극 활용하는 시간은 가성비 좋은 스포츠카의 스티어링 휠을 잡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상쾌하고 시원한 주행을 마음껏 즐겨도 좋으리라.
고속주행이 끝나고 잠시 숨을 돌리면 굽이치는 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산 위로 오르며 굽이굽이 휘어지는 연속 구간에서 세닉은 흐트러짐 없이 가장 좋은 라인을 그릴 줄 안다.

코너를 앞에 두고 브레이크에 힘을 주면 무게 중심이 앞으로 이동하지만 쏠리지 않는다. 곧바로 평정심을 되찾으며 코너를 돌기 시작하고 가속페달에 힘이 들어가는 만큼 속도를 빠르게 올리며 코너를 빠져나간다.
이런 코너를 수차례 반복할 때마다 SUV인데 SUV인데 재미있다는 생각이 세닉을 훓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계속 온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분명 전기차의 낮은 무게중심과 모터스포츠로 갈고닦은 르노 노하우 가득 담긴 하체는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달려보라며 여유를 보인다.
도착지에서 도어를 열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쏟아지는 뜨거운 태양이 반기지만, 짧은 시간이지만 다양한 주행을 즐기며 세닉에 빠져있을 동안 온몸을 휘감고 있었던 상쾌한 느낌과 작게 이어지는 설렘에 습도 가득한 폭염에도 짧은 가을의 시원한 바람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아니, 이런 옵션이 있네?

세닉의 뒷자리에 앉아 있으면 뿌연 하늘이 보인다. 실제 하늘이 흐린날의 모습 같지만 포르쉐나 벤츠의 고급 모델에서나 보던 그 파노라믹 루프다. 르노는 '솔라베이 파노라믹 선루프'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선루프라는 것은 열고 닫을 수 있다는 것인데? 하는 의문을 지우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하나씩 앞에서부터 또는 뒤에서부터 루프가 투명해진다. 뜨거운 태양을 사랑하는 유럽인들의 마인드에서 보면 파노라믹 루프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싫었을 텐데 글로벌 시장을 생각해 타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완전히 투명하게 하면 1.65m² 크기의 루프는 온전히 하늘을 받아들이고 머리 위에 시시각각 변하는 멋진 풍경화를 눈에 담을 수 있게 해준다. 자외선 차단율은 99%, 열 투과율은 불과 16에 불과해 믿을만한 성능을 자랑한다.
하지만, 유럽과 달리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 싶어 하는 한국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항상 투명하게 해두고 다닐까 싶다. 동급에서 보기 쉽지 않은 이 기능은 조작해 보는 재미로도 함께 타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다.

뒷자리에 앉아 암레스트를 내리면 어? 컵홀더가 2개나 되는데? 하고 놀라며 컵홀더를 돌리며 보게 되는 홈이 파인 것에 궁금증이 생긴다.
언제나 '일상을 함께하는 자동차'를 만드는 것을 철학으로 생각하는 르노는 가끔 이렇게 아기자기한 재미와 편의장치를 준비하기도 한다.
세닉의 뒷자리 승객들이 아주 편하게 유튜브나 영상을 볼 수 있게 스마트폰, 태블릿 등을 거치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원하는 만큼 각도를 돌려 볼 수 있게 해 장거리 이동 시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서비스 장치다. 다만, 보호 케이스는 빼야 한다. 여기서 영화 한편 볼 시간이면 어느새 2시간은 훌쩍 지난 후가 될테니, 뒷좌석 탑승자들이 지루하거나 불편할 틈은 없다.
이것, 꼭 해보시고! 이것, 믿음 가죠?

세닉에는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을 원할 때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기능도 있다. 프랑스 일렉트로니카 뮤직의 거장 '장 미셸 자르'가 세닉의 일렉트릭 사운드를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세닉의 다양한 즐거움을 위해 스튜디오, 팟캐스트, 콘서트, 몰입, 클럽 등 5가지 리스닝 모드를 개발했고, 차량을 타고 내리는 순간 느낄 수 있는 세닉 고유의 웰컴 시퀀스도 즐길 수 있다. 사운드가 별것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순간순간이 새로운 즐거움일 수 있을 것이다.

전기차를 타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걱정하게 되는 것은 전기차 화재다. 100% 화재가 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최대한 100%에 가깝게 화재를 예방하거나 화재가 발생해도 최단 시간에 진압할 수 있다면 불안한 마음은 조금은 가실 것이다.
르노는 '파이어맨 엑세스'라는 전기차 화재 대응 기술을 개발했고, 특허를 공개해버렸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 시 직접 소방관이 배터리에 소화 호스를 연결해 화재 진압을 초기 단계에서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기능이 있으니, 일단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
르노 세닉, 어쩌면 내년을 기약해야 할지도...

르노 세닉은 그랑 콜레오스의 성공에 이어 등장한 5번 타자다. 5,494만 원부터 시작하고 보조금을 받게 되면 4,600만 원 대에서 구매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는 999대만 수입이 예정되어 있다. 부산 생산이 아닌 프랑스 두에 공장에서 생산해 전량 수입하는 르노코리아의 '수입차'다. 빠르면 8월 부터 사전예약 고객에게 인도되기 시작할 텐데, 올해 물량이 빠르게 소진될 가능성도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세닉의 매력을 느껴본다면, 프랑스 공장은 분명 생산을 더 해 달라는 르노코리아의 요청에 더욱 바빠질지도 모른다.
일상적인 느낌으로 가득했던 전기차 보다는 조금 다르고 특별한 전기차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르노 세닉은 아주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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